주5일제 수업이 전면 실시되면서 가장 발빠르게 움직이는 것은 사교육 시장이다. 예견되었던 바다. 토요일에 동네를 다녀보면 평일과 별 다를 바 없이 아이들은 눈에 띄지 않는다. ‘놀토’라는 말이 무색하다. 경제적 어려움으로 학원에 가지 못하는 아이들 가운데 상당수는 집안에서 무료한 시간을 보내거나 PC방에서 게임에 몰두한다. 부모와 함께 나들이하거나, 스스로 또는 친구들과 어울려 뿌듯하게 시간을 보내는 아이들은 아주 소수에 불과한 듯하다. 정부의 독려로 여러 사회단체들이 청소년을 위한 현장학습 프로그램들을 마련하고 있지만, 양적으로 너무 부족한 실정이다.
교육당국은 주5일 수업 실시의 취지가 ‘가족 간의 유대를 높이고, 다양한 체험으로 주체적인 학습 능력과 자질을 길러주는’ 데 있다고 했다. 달리 말하면, 그것은 생활의 균형을 회복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고, 이는 주5일 근무의 취지와도 일맥상통한다. 토요일은 학교 공부의 부담을 내려놓고, 안으로부터 우러나오는 삶의 에너지를 틔우고 키우는 시간이다. 놀이와 예술 활동에서 견학과 자원봉사에 이르기까지 그 스펙트럼은 넓다. 어느 것이든, 생동하는 경험이 되어야 한다.
그렇게 되려면 어른들이 짜놓은 프로그램에 참여하는 정도로는 부족하다. 아이들이 스스로 어떤 세계를 만들어갈 수 있어야 한다. 동네에서 여러 가지 일거리들을 생각해볼 수 있겠다. 주말장터에서의 무대 공연, 집 주변의 화단 가꾸기, 방치 자전거의 처리, 도로의 안전사고 위험 구역 조사, 독거노인의 생활 실태 모니터링, 고장 난 우산이나 컴퓨터 수거하여 수리하기 등. 이러한 활동을 통해 공부와 일과 놀이가 자연스럽게 연결될 수 있다. 배움과 탐구의 즐거움을 누리면서 지역사회에도 기여할 수 있다.
‘맹모삼천’에 대해 위트 넘치는 해석이 있다. 맹자의 어머니가 시행착오로 거처를 옮겨다닌 것이 아니었다고 한다. 그것은 아들이 배움의 길에 제대로 들어서도록 하기 위한 기획이었다는 것이다. 우선 묘지 근처에 살면서 인생의 무상함을 느끼도록 했고, 장터 근처에 살면서 생존의 치열함을 알게 했다. 그렇게 삶의 리얼리티를 충분히 체험하고 나서 지식의 세계에 입문하도록 했다. 구체적인 현실을 접하면서 획득하는 인지능력과 감수성이 인간의 성장에서 매우 중요한 바탕이라는 점을 강조하는 말이다.
지금 아이들에게는 자아를 형성해가는 시공간이 제대로 주어져 있지 않다. 생각과 관찰이 ‘검색’으로 대체되고, 관계 맺기와 체험이 ‘접속’으로 변환되면서 삶은 무중력 상태로 흩어져 버린다. 또래들과 어울리며 그리고 윗세대와의 교섭 속에서 접화군생(接化群生)하고 절차탁마(切磋琢磨)하는 자리를 어떻게 마련할 수 있을까.
어느 고등학교에서는 졸업식 때, 늘 골칫거리인 난동을 막기 위해 그런 사고를 칠 만한 ‘문제아’들에게 안전요원의 임무를 주어 순조롭게 행사를 치렀다고 한다. 성적, 외모, 돈이 아니면 존재감을 느끼지 못하는 환경에서 게임이나 폭력은 손쉬운 탈출구가 된다. 자신이 살아있음을 확인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져야 한다. 어른들이 그 마당을 함께 열 수 있다. 허세와 욕망에 끌려다니지 않고 자기 나름의 삶을 영위하는 어른들이 아이들에게 살아갈 힘을 북돋을 수 있다.
영어에서 사춘기를 뜻하는 ‘puberty’의 어원은 ‘pubes’라는 라틴어인데, ‘어른’을 의미한다. 그리고 거기에서 ‘public’이라는 단어도 파생했다. 사춘기는 공적인 활동무대로 나아가면서 성인으로 이행하는 시기다. 토요일에 아이들은 시험공부와 사이버세계에서 벗어나 공적인 삶의 보람을 체험할 수 있어야 한다. 그것이 가능하려면, 여러 사람들과 함께 생활의 터전을 빚어가는 어른들의 모습이 눈에 띄어야 한다.
[경향신문]2012_03_17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203162103485&code=9900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