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가지 질문을 하겠다. 예술가는 과연 노동자인가, 그렇지 않은가? 단순한 질문같아 보이지만 실은 우리 사회는 아직도 이에 대한 명확한 답을 내놓고 있지 못하는 현실이다. 예술가를 노동자로 인정하는 일이 어떤 결과를 가져오게 되는 것인지를 먼저 생각해보는 것이 순서일 듯 싶다. 사전적인 의미로 노동자는 '노동력을 제공한 대가로 임금을 받아 생활을 유지하는 사람'이다. 그렇다면 노동자에게 노동대가로 주어지는 보상은 단순히 임금뿐일까? 그렇지 않다. 가장 기본적인 보상은 고용보험과 산재보험을 비롯한 이른바 4대 보험일 것이다. 불확실한 미래에 대해 제도적으로 안전장치를 제공하는 것이야 말로 사회적 약자에 대한 배려이자 사회 혹은 조직의 성숙도를 판단하는 기준일 터이다. 그러나 이 땅의 예술가들은 그런 배려에서 멀어진 채 오늘도 각자의 현장에서 치열하게 최소한의 생존을 위해 싸우는 중이다.
지난해 10월28일 국회본회의에서 '예술인복지법'이 통과되었다. 이 법의 취지는 사실 단순하다. 국가와 지방자치단체가 예술인의 지위와 권리를 보호하고, 예술인의 복지 증진에 관한 시책을 수립·시행하기로 한다는 것이다. 이 법이 만들어지게 된 직접적인 배경에는 물론 최고은 감독의 사망이 있었다. 이후 예술인의 복지문제가 사회적 과제로 떠오르게 되었고 국회는 예술인복지법 제정을 추진하기에 이르렀고 올 11월 시행을 앞두고 있다.
그러나 제정된 법은 실망스러웠다. 원안보다 복지혜택은 축소되었고, 예술인의 사회보장에 대한 구체적인 언급도 빠져 있으며, 실질적인 생활인으로서 도움을 줄 지원의 방식도 지나치게 추상적인 형태였다. 예술계가 원하던 고용보험과 산재보험의 적용과 같은 구체적인 문구는 빠진 채였다. 더 큰 문제는 이 법의 혜택을 받을 수 있는 예술가의 범위였다. 고용형태가 명확하지 않은 예술가는 이 법의 수혜대상에서 제외되는데, 영화와 무용과 같이 특성상 느슨한 고용상태인 집단창작 방식이 아닌 미술가, 문인들의 경우 이마저도 제외된다. 한 조사에 의하면 창작활동과 관련한 예술가들의 월평균 수입액은 소득이 아예 없거나 월 100만 원 미만인 경우가 전체의 66.7%에 이른다고 한다. 또 세 명 중 두 명은 실업급여와 산재 관련 보험 혜택을 받지 못하고 있다고도 한다. 그래서 제정하게 된 이 법은 결국 예술가를 노동자로 볼 수 있는가 하는 원론적인 문제의 덫에 갇힐 수밖에 없는 한계를 안고 있는 것도 사실이었다. 논란의 핵심은 노동력을 매개로 고용자와 피고용자 사이에 맺어진 약정의 유무다. 앞에서도 언급했지만 노동자란 자신이 가진 노동력을 제공해서 일정한 임금이라는 보상을 취해서 생활하는 사람인데, 이것을 글자 그대로 적용한다면 예술가는 노동자라는 명제에 정확하게 부합하지 못하는 측면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이제 우리 사회는 예술가들을 보는 시각을 바꿔야 할 때가 된 듯하다. 영상, 공연, 시각, 문학 등의 예술작품을 공적인 영역으로 파악해야 할 때가 아닌가 싶다. 요즘 들어 가장 많이 듣는 말 중의 하나가 문화가 국가의 경쟁력이라는 말이다. 그러나 그 말의 이면에는 무한경쟁 시스템에 대한 맹신이 자리 잡고 있다는 것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더욱이 MB정부의 공약을 비롯해 100대 국정과제에도 있었던 예술인공제회 설립과 같은 정책은 어디 갔는지 도통 구체적 모습이 보이지도 않는다. 예술가들만을 위한 제도적 장치를 만든다면 영세자영업자와의 형평성 문제가 발생한다는 고용노동부의 주장은 일견 그럴듯해 보이지만 이는 예술적 생산물을 작품이 아닌 그저 상품으로만 인식하고 있다는 인식의 한계만을 보여줄 뿐이다. 결국 우리 사회가 예술가를 공공의 자산이라는 인식 하에 끌어안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보인다. 예술은 그저 누리고 향유하면 되는 것으로 끝나서는 안 될 일이다. [인천일보]2012_06_12 http://news.itimes.co.kr/news/articleView.html?idxno=460710 |